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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절 스트레스, 명절증후군, 효자코스프레

■ 일상|2016. 9. 25. 14:35

내가 왜 골라도 저딴 걸 골라가지고...

얼마 전, 점심시간에 카페에서 카페라떼를 한잔 시켜놓고 한가한 척을 하며 앉아 있는동안 근처 테이블에 있던 여성분들 중 누군가가 했던 말입니다. 아마도 같은직장 내의 동료끼리 점심시간동안 잠시 얘기를 하러 나온 것으로 보였습니다. 의도적으로 들은 건 당연히 아니고, 가만히 들어보니 곧 다가올 명절인 추석으로 인해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남편과 자신 둘 다 맞벌이를 하는 중이고 근무시간과 급여 또한 비슷한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평소에 가사일의 분담이 전혀 없고, 시켜봐야 본인이 다시 해야하는 수준이라 전적으로 본인(아내)이 하는데, 명절만 다가오면 명절과 관련한 일들 때문에 그 스트레스가 임계점까지 달하는 듯 보였습니다. '저딴 걸 고른 내 잘못이지. 하필 저런 게 걸려가지고...이제 들어가자' 라고 하시며 동료들과 카페를 나가셨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에 어느정도 공감이 되고, 아직까지 우리사회에서는 며느리(아내)를 고생시키는 행위들을 당연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 더 안타까웠습니다. 명절에 여자만 힘들게 하는 집안들이 아직도 상당한 비율을 차지한다는 점에는 본인 또한 불만이 많은 편이기에, 제 생각과 여러 사연들을 한번 풀어볼까 합니다.


자신의 부모만 중요하며, '대리효도' 를 강요하는 효자코스프레​

정말 재밌는 현상들 중 하나가, 바로 결혼만 하면 효자가 되는 남편입니다. 물론 남편도 남편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고 아내도 아내자신의 부모에게 효도하는 것이야 반드시 필요하죠. 하지만 '결혼 후 효자가 되어버린 남편' 의 경우 아내에게 대리효도를 강요할 뿐 아니라 아내의 부모쪽은 중요시 여기지 않는 잘못된 효도를 하는 경우가 매우 빈번합니다.


이렇게 효자가 되어버린 남편은 명절만 되면 그 누구보다도 빨리 시댁에 가자고 재촉하고, 아내에게는 시댁에서 적어도 2 ~ 3일정도 묵길 '강요' 하며, 자신의 형제자매들을 꼭 보고 갈 것을 강요합니다. 정상적인 효자라면 제 손으로 음식도 만들고 밥상도 차려서 조상님과 부모님께 대접해드릴 생각을 해야 하는게 정상일텐데, 장보기부터 설거지까지 모든 공정을 아내 혹은 어머니에게 맡겨 놓고 자신은 방바닥 혹은 소파와 2 ~ 3일 동안 합체한 상태에서 밥상 나오면 밥먹고 술상나오면 술먹고 지내는 효자코스프레가 정말 많죠.


게다가 아내에게는 시댁에서 이것저것 강요를 하면서 정작 자신은 장인댁에 가서 밥만 얻어먹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집에 갈 시간만을 기다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부모는 며칠동안 봐야할 정도로 중요하면서, 아내의 부모에게는 밥만 얻어먹고 몇시간 뒤에 가도 된다는 수준의 인성이라니...대단합니다. 며칠 전 이재명시장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내 자식이나 남의 자식이나 같은 사람이다. 맞습니다. 내 부모님이나 남의 부모님이나 똑같이 중요합니다. 내가 부모님을 보고 싶은 만큼 상대방도 자신의 부모님을 보고 싶어 합니다.



우리 엄마때는 더 힘들었다, 너는 뭐가 힘든데?

나이가 많지 않고 현대식의 교육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썩어빠진 꼰대사상을 가지고 있는 ​'젊은 꼰대' 들이 적지가 않은데, 바로 위 소제목과 같은 말을 하고 다닙니다. 자신의 어머니께서 평생을 불합리하게 고생을 해왔으면 이제는 그런 일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정상적인 사고방식일텐데, '우리 어머니때는 임신한 채로 밭갈고 혼자서 명절음식 다 장만한 것에 비하면 넌 힘든 것도 아니다' 라는 생각은 본인의 부모님 또한 욕보이게 하는 말이죠.


군대에서 잘못된 사고방식을 배워온 경우, '넌 시어머니가 한명이지만 군대에서는 그런 시어머니가 20명이다. 그러니 넌 힘든 척 하지마라.' 라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명절스트레스고 증후군이고를 떠나서, 이런 언행들을 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인격을 바로 증명해줍니다. 대한민국을 썩게 만드는 행위들이죠.


어머니(혹은 아버지) 눈치 때문에 도와줄 수가 없어

작년 추석 전에 결혼을 한 20대 후반의 지인(여성)이 있는데, 결혼 직후 보낸 첫 명절에서 정말 태어나서 처음 겪는 경험을 했다고 합니다. 시댁에 머무는 이틀동안 상차림과 상치우기, 설거지를 하는데 시댁의 어른들과 남편이 너무 당연한 듯이 앉아만 있고 본인 혼자서만 다 했다고 하더군요. 게다가 남편의 말이 더 가관이라고 하더군요. '어머니가 하지 말래서 도와줄 수가 없다.'


자신의 집안에서는 남자들도 이것저것 같이 하는게 당연한 일인데, 시어머니 눈치속에서 이렇게 며느리 혼자만 일을 시키고 남편은 저런 식의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며 스마트폰만 만지고 있는 집안이 있다는 것을 결혼 후에야 알았다 라고 하며 불만을 토로하는데, 정말 안타깝긴 했지만 형식적인 답변 외에는 해줄게 없었습니다. 정말 대단하지 않습니까... '엄마가 하지 말래서 안해' 라니, 이런 경우는 효자가 아닌 마마보이라 봐야하고, 그럴 거면 뭣하러 남의 집 귀한 딸래미를 데려와서 몸고생 맘고생 시키는지 모르겠습니다. 결혼을 기피해야 할 남자들 중 1위는 마마보이 입니다.



엄마, 이제 고생 안하게 해줄게

혹시나 결혼 후 첫 명절에 남편이 자신의 어머니께 이런 말을 했거나 비슷한 말을 했다면, 임신을 미루시고 이 사람과 평생 살아갈 지를 아주 심각하게 고민해 보시길 권고합니다. 본인의 입으로 '난 대리효도를 시키는 마마보이다' 라고 말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어머니께 당신이 안부전화 좀 드려' 라던가, '엄마 생신이시니까 당신이 상 좀 차려드려' 라는 등의 대리효도를 통해, 두 번째 문단에서 이미 언급한 '효자코스프레'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이걸 눈치채는 여성분들은 많지가 않죠.


이런 유형의 남자들은 지금까지 말했던 자신의 엄마만 중요하고, 자신의 엄마가 힘들었던 걸 강조하고, 자신의 엄마가 시키는 대로만 하는 점들을 복합적으로 지니고 있는 상태로서, 아내에게는 자신의 어머니에게 온갖 효도(?)를 '대신' 해줄 것을 강요합니다. 특정 모 집단에서는 속된 말로 '아가리효도' 라고도 합니다.


한번 더 말하지만, '엄마 이제 고생 안하게 해줄게' 라는 말은 '나는 너(아내)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도 없고 무조건 우리 엄마만 중요해,  하지만 효도는 니몫이고 넌 거기에 따라야 해' 라는 의미입니다.  혹시나, ' 아, 어머니를 아끼고 생각하는 아들이구나 '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왜 하필 아내가 생긴 시점에서 그런 말을 할까요, 지금까지는 뭐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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